얼마 꺼내 쓸까? 4%, 20, 10을 활용하자

65세 은퇴자 진운태씨. 앞으로 노후자금에서 생활비를 얼마나 꺼내 쓸까 고민이 앞선다. 매월 연금이 나오는 데는 국민연금이 전부다. 지금이라도 종신연금보험에 가입하면, 거기서 나오는 현금흐름으로 생활비를 보탤 수 있다. 그렇지만 나중에 자신이나 아내가 덜컥 병이라도 걸리면 목돈이 필요할 테니, 연금에 가진 자금을 쏟아 부을 수는 없다. 결국 아내와 상의한 끝에 새로 연금 가입하기는 없던 일이 됐다.

국민연금 이외에 연금이 더 있는 사람들과 진운태씨는 사정이 좀 다르다. 그는 가진 돈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당장 생활비가 모자랄 터다. 그런 그에게 노후파산을 막는 일은 매우 절실한 생존문제다.1499833037285_3

보수적인 사람도 4%법칙만 따르면 될까?

가진 자산에서 매년 생활비를 빼 쓰는 인출전략 중 대표적인 게 ‘4%법칙’이다. 은퇴 첫해에는 노후자금의 4%를 인출하고, 다음해부터 물가상승률에 따라 인출액을 매년 늘려가면, 노후기간 30년 동안 노후파산을 면할 수 있다는 법칙이다. 4%법칙은 20여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개인 재무관리사였던 윌리엄 벤젠(William P. Bengen)이 처음 제시한 이후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방법이다. 4%만 기억하면 될 뿐이고, 복잡한 재무분석절차도 없이 쉽게 활용할 수 있어서 유명매체를 통해 빠르게 전파됐기 때문이다.

※ 4%법칙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여기에서 이전 글
(http://fngenii.miraeassetdaewoo.com/?p=128943)을 확인하세요.

그렇다면 4%법칙만 지키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걸까? 진운태씨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4%법칙이 만들어진 게 꽤 오래전 일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90년대 이자율은 10%대였지만 지금은 1%대로 하락했다. 투자자산 기대수익률도 예전만 못하고 변동성도 커졌다. 4%법칙은 당시 아주 보수적인 기준으로 만든 것이기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진운태씨처럼 생활비 상당부분이 자산을 헐어 쓰는 데 달린 사람들은 돈이 떨어지면 속수무책이다.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자산이 남는 한이 있더라도 더 보수적으로 인출하고자 할 수 있다.

안심하고 인출하세요, ‘필 프리!(Feel Free!)’

미국 계리사회(SOA, Society of Actuary)에서는 계리사이자 투자전문가인 에반 잉리스(Evan Inglis)의 안심 인출전략(Feel Free)을 제시했다. 미국 계리사회 이사였던 잉리스는 30년 넘게 연기금의 자산운용 컨설팅 경험을 쌓고 현재 운용사에서 기관 컨설팅 부문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연금 전문가다. 그는 얼마 전 70이 넘은 부모님이 노후자금에서 얼마나 써야할 지 문제를 해결해 드렸는데, 그의 지인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계기로 그는 계리사회를 통해 자신이 만든 필 프리 인출전략을 소개하기로 했다.

※ 계리사란 확률 또는 위험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가를 말합니다. 주로 보험 또는 연금상품을 개발하거나, 보험사나 연기금의 위험관리 일을 합니다.

잉리스의 필 프리 법칙은 4% 대신 숫자 20을 활용한다. 부부 중 어린 사람의 나이를 20으로 나누는데, 그 몫이 바로 올해 인출액을 결정하는 인출률이다. 예를 들어보자. 진운태씨가 65세이고 아내가 64세라고 하자. 아내 연령(64)을 20으로 나눈 값은 3.2이다. 진운태씨에게 3억원이 있다면 그 3.2%인 960만 원(월 80만원)만큼은 그 해에 마음 놓고 생활비로 인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1499833024705_1

‘필 프리’ 법칙은 아주 보수적이라는 점을 잉리스는 재차 강조한다. 4%법칙보다 인출액이 적어서 당장 허리끈을 졸라매야 하지만 그만큼 노후자산이 바닥날 위험에서 자유롭다. ‘필 프리’ 법칙에 따라 계산한 인출액이 워낙 적어 불만이 크다면 조금 늘려도 된다. 대신 그럴 경우 노후동안 중간 중간 자산상황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고 잉거스는 전한다. ‘필 프리’ 인출액만으로 생활비를 모두 충당할 수 있는 은퇴자의 경우 부부 모두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주는 보험가입을 고려해도 된다. 받는 연금액이 ‘필 프리’ 인출액과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더 인출하지 마세요. ‘노 모어!(No More!)’

이제 반대의 상황을 보자. 노후자금 인출 상한선은 얼마나 될까? 필 프리 인출액을 계산할 때 나이에서 20을 나누었다면, 상한선을 알아볼 때에는 10으로 나눈다. 진은태씨 아내 연령(64)을 10으로 나누면 6.4다. 진은태씨 노후자금 3억원에서 6.4%, 그러니까 1920만 원을 꺼내 쓴다면 틀림없이 노후자산이 바닥난다. 의료비처럼 일회성 목돈의 경우 노 모어 인출액 이상 꺼내 쓰는 건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 생활비로 이 금액 이상 꺼내 쓰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1499833053259_2

4%법칙과 함께 쓰면 정밀한 인출전략 완성

‘4%법칙’과 함께 ‘필 프리’, ‘노 모어’법칙을 병행하면 꽤 그럴싸한 인출전략을 만들 수 있다. 먼저 4%법칙에 따라 매년 인출액을 정한다. 여기서 ‘필 프리’ 법칙을 그 해 인출액 하한선, ‘노 모어’ 법칙을 상한선으로 삼는다. 이렇게 하면 가진 자산에 비해 너무 적게 꺼내 쓰거나 지나치게 많이 인출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노후자금 3억 원이 있을 때 그 4%인 1200만 원(월 100만 원)을 첫해 꺼내 쓰고, 다음해부터는 물가상승률에 따라 인출액을 점차 늘려간다. 여기까지는 4%법칙과 똑같다. 그러다가 인출액이 ‘필 프리’ 기준 보다 낮아지면 그해 인출액을 추가로 더 늘려준다. 노후자금 운용성과가 좋아서 생활수준을 더 높여줄 수 있는 경우다. 그 후 어느 때 인출액이 ‘노 모어’ 상한선을 넘었다. 이런 경우 상한선 밑으로 인출액을 큰 폭으로 줄인다. 가까워진 노후파산을 피하기 위한 조치가 되는 셈이다.

잉거스는 ‘필 프리’ ‘노 모어’ 법칙도 4%법칙처럼 기억하기 쉽고 개인 재무분석 절차 없이 누구나 사용 가능한 게 장점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이 두 가지 법칙을 합쳐 놓으니 더 나은 인출전략이 탄생하는 시너지도 발휘한다. 은퇴가 목전이다. 노후자금에서 얼마씩 써야 할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숫자 3 개를 기억해보자. 4%법칙과 ‘필 프리’의 20, ‘노 모어’의 10 말이다.


글 김혜령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