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생활비, 바닥부터 시작하자!

‘은퇴한 뒤 생활비 어디서 얼마나 줄여야 하나?’

은퇴가 코앞이다. 은퇴하면 지금 매월 쓰는 생활비에서 얼마라도 줄여야 할 터다. 따박 따박 들어오던 소득이 없거나 크게 줄어들 테니 말이다. 연금과 모아놓은 자산으로 생활비 대부분을 충당해야 하니, 그에 맞춰 생활비를 얼마큼은 덜어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재무관리에서는 보통 은퇴하면 종전보다 30% 정도 생활비를 줄이라고 권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만큼 생활비를 절감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이미 생활비가 빠듯해서 더 이상 줄일 여지가 없을 수 있다. 반대로 생활비를 30% 떼어내는 것으로도 모자란 은퇴자들도 있다. 평균 노후생활비에서 지침을 찾으려 할 때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공단에서는 2015년 기준 부부 노후 적정생활비가 평균 월 237만원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역시 평균치이다 보니, 그와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는 참고만 될 뿐이다.

결국 노후생활비는 자신의 상황에 맞게 스스로 정해야 말이 된다. 동시에 노후준비의 첫 단계로써 노후생활비 결정은 매우 중요하다. 생활비를 무턱대고 크게 잡으면 노후자금이 모자랄 수 있다. 노후가 길어진다는 점, 대체로 노후자금이 넉넉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생활비 절제방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의 노후생활비 찾기,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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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후생활비, 있던 것을 허물고 처음부터 시작하자

노후생활비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실패학의 창시자이자, 세계적 권위자인 하타무라 요타로(畑村 洋太郞) 도쿄대 명예교수의 지혜를 빌려보자. 그는 나노‧마이크로 가공학 전문가이자, 실패 전문가다. 실패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통해 역으로 성공원리를 찾는 게 그의 분야다. 실패학은 곧 성공학이라는 것이다. 그의 실패학은 경영이나 자기관리 등 여러 부문에 광범위하게 적용해볼 수 있다.

하타무라 교수는 전혀 다른 환경에 직면했을 때, 어떤 새로운 제약이 생겼을 때, 기존에 있었던 것에서 가감할 게 아니라, 제로베이스에서 새로 설계하라고 충고한다. 이른 바 토털설계(Total Design)다. 쓸 만한 것을 남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두 버리겠다는 발상을 가지면, 당초 필요하다고 보았던 게 사실 잡동사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두 버려야만 진정 군더더기 없는 것을 새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노후생활비도 마찬가지다. 지금 쓰는 생활비에서 무엇을 줄일까에 초점을 두다보면, 실제로는 쓸데없는 비용을 그냥 지나칠 수 있다. 백지에서부터 필요한 생활비를 하나씩 쌓아가보자. 매월 지출하지 않으면 당장 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는 것부터 항목을 만들어보자. 세금, 공과금, 식비, 이렇게 차근차근 쌓아가다보면, 어림짐작 했던 노후생활비가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오고, 어떤 항목이 진짜 필요한지 아닌지, 손에 잡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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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고의 전환으로 생활비 줄이는 지혜 찾기

금방 ‘생활비를 줄인다’가 아니라, ‘생활비를 새로 찾는다’로 생각을 바꿔봤다. 이렇게 사고를 전환하면 각 생활비 항목별로도 비용을 덜어낼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하타무라 교수는 ‘소유한다’에서 ‘이용한다’는 시각으로 보면 새로운 방법이 넘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카쉐어링의 경우를 보자. 차 구입비나 관리비, 주차비용은 업자가 부담하고 이용자는 부담할 필요가 없다. 은퇴 이후 내 차를 가지는 대신, 카쉐어링과 값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높아지는 통신비를 잡기 위해 알뜰요금제 회사로 이동하는 방법, 온라인 쇼핑몰 이용해보기, 자급자족 해보기, 나누어 쓰기 등 새로운 생활방식에 도전해보자.

요즘 이러한 새로운 생활방식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이럴 땐 아무래도 자녀나 나 어린 동료에게 물어보고 도움도 요청해보자. 그동안 인생 선배로써 삶의 지혜를 자녀에게 후배에게 물려주기만 했다면, 가끔씩은 그들로부터 지혜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1494218969359_shutterstock_236117851

3. 필수생활비와 여유생활비 구분하기

마지막으로 생활비를 매월 꼭 써야 하고 생존에 필요한 필수생활비와, 그 외에 쓰면 좋지만 당분간 안쓰거나 줄일 수 있는 여유생활비로, 특성에 따라 분류해보자. 이것을 왜 하는가 하면 특성별로 노후생활비와 노후소득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다.

필수생활비는 가능하면 부부의 여생동안 현금흐름이 약속된 ‘연금’으로 충당한다. 국민연금이나 공적연금은 여생동안 소득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물가상승에 따라 연금액이 늘어나는 장점이 있다. 국민연금만으로 모자라다면 종신연금과 같이 현금흐름이 보장되는 다른 대안을 찾아서 보충해보자.

여유생활비는 투자자산으로 마련한다. 투자자산은 시장상황에 따라 수익률이 높을 수도, 수익률이 낮거나 손실을 볼 수도 있다. 투자자산의 운용성과가 좋으면 좀 더 인출해서 여행을 가는 등 즐거움을 찾아 삶의 질을 높이다. 수익률이 낮았다면 조금 인출하거나 인출을 나중으로 미뤄서 노후자산을 보호한다. 이렇게 하면 생활비 계획과 노후자산 관리를 서로 밀접하게 연결시킬 수 있다.

은퇴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제약에서 길을 찾는 가족혁신(家族革新) 과정이다. 이럴 때는 가진 인적자원을 총 동원해서 신선한 생각을 짜내야 하지 않을까? 노후생활비 짜는 과정을 부부가 함께 해보자. 요즘은 자녀와 동거하는 은퇴자들도 많은데, 가능하면 자녀도 참여시키자.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아내나 남편이 이미 해결책을 가졌을지도, 자녀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진정 서로 보듬고 세상을 헤쳐 나갈 용기를 불어넣어줄 사람들, 내 가족 말고 누가 있을까?


글 김혜령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