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육아의 시대 이왕 할거면 전문가가 됩시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광고가 있다. 대문을 열고 어린 손자가 뛰어 들어온다. 할아버지는 모처럼 찾아와준 손자를 부둥켜안고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장면이 바뀌고 손자가 헤집어놓은 집안의 참상이 비춰진다. 살림살이는 폭격을 맞은 듯 뭐하나 성한 데가 없다. 할아버지는 고무장갑을 끼고 손자가 먹은 음식 설거지에 난장판이 된 거실 청소에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몰골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 내외가 내려와 손자를 데려간다. 손자와 할아버지는 또다시 부둥켜안고 헤어짐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손을 흔들며 손자를 떠나보낸 할아버지는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천국을 되찾은 듯 행복에 겨운 얼굴로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리모컨을 켠다.

이 광고는 방영되자마자 노인세대로부터 엄청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오죽하면 옛말에도 애 볼래, 밭 맬래 하면 밭 맨다고 했다. 밭매기는 중노동이다. 땡볕에 쭈그리고 앉아 호미로 잡초를 일일이 뽑아내는 작업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육체노동 중 하나다. 그 고되고 삭신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중노동보다 애 보기가 더 힘들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증언이다. 누군가는 그랬다. 손주가 아니라 원수라고. 

통계청에서 결혼한 자녀와 함께 사는 60세 이상 노인을 조사해봤더니 30퍼센트가 자녀 부부를 대신해 손주를 양육하고 집안 살림을 전담한다고 답했다. 말인즉슨 나이 든 부모님을 결혼한 자녀가 모시고 사는 게 아니라 나이 든 부모님이 결혼한 자녀의 자녀를 키워주며 가정부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뜻이다. 요즘 세상에 거의 가 맞벌이하는 부부들이니 빈 집에 남겨진 부모는 애를 키우는 보모노릇에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 짓는 식모노릇을 도맡지 않을 수가 없는 형편이다. 

가뜩이나 젊은 사람들 살기 어렵다고 아등대는 데 손주라도 돌봐 주십사, 부탁해오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집에서 놀면 뭐하나, 애나 봐주지, 라는 자식들 시선도 불편하다.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아서 내 주위만 해도 애들 좀 키워달라는 자식들 부탁에 싫다고 딱 잘라 거절하는 노부부들이 꽤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손주육아에서 제 2의 삶을 개척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늘그막에 늦둥이 하나 얻은 셈치고 제대로 한 번 키워보겠다며 의욕에 불타오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분들을 ‘할마, 할빠’라고 부른다고 한다. 할빠는 할아버지 겸 아빠, 할마는 할머니 겸 엄마라는 뜻이다.1528156728918

사실 일리가 있다. 요즘은 친구 같은 아빠가 유행이라는데 우리 젊은 시절만 해도 커가는 아이들 얼굴 한 번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세 끼 밥처럼 자연스러운 야근에 토요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빠듯한 직장인 생활은 가족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아갔다. 돈 벌어오느라 정작 내 새끼 키우는 기쁨을 느껴보지 못한 노인들이 체력과 기력이 남아있을 때 손주육아에서 보람을 찾는 것도 노후를 잘 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교육은 가르치는 쪽의 자존감을 고취시킨다는 점에서 고독과 허무의 이중고에 빠지기 쉬운 맥 빠진 노후를 반등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전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만 해도 어린 시절 외할머니 손에서 성장했다. 백인이었던 외할머니는 흑인 혼혈인 오바마를 미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지켜준 보호자이자, 오바마를 인권변호사로 키워낸 가치관의 형성자였다. 외할머니의 헌신적인 교육이 오바마의 성공을 뒷받침해준 것이다. 오바마는 선거 유세 마지막 날 유세를 포기하고 하와이로 날아가 외할머니의 임종을 지켰다. 빌 게이츠도 자서전에서 책을 좋아하는 할머니 때문에 독서하는 습관이 생겼고 하버드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손주육아의 장점은 연구결과로도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녀를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남아있다는 자신감의 회복, 그리고 어린 손주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데서 힘도 들지만 그만큼 즐거운 경험이 반복된다는 양질의 정신적 자극은 치매 등의 노인성 질환을 막아주는 최고의 예방주사다. 

그렇다고 앞서의 텔레비전 광고 같은 풍경을 내 집 거실에서 몰아낼 수는 없다. 젊어서도 애 하나 돌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골다공증에 고혈압약에, 당뇨병약에 기억력도 가물가물한 늙은 몸이 육아를 온전히 버텨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집집마다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고 부모 자녀 간에 갈등과 서운함도 계속해서 쌓여갈 것이다. 

늙은 할머니가 피곤에 지친 기색으로 칭얼대는 어린 손주를 포대기에 들쳐 업고 동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이왕지사 손주육아를 떠맡게 되었다면 기저귀 갈아주고 놀아주고 제때 밥이나 먹이는 보모 역할에 내몰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육아에 의사를 반영하여 교육자, 관리자가 되어 손주의 미래를 스케치하는 존경받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손주들이 먼 미래에 ‘나 어렸을 때 할머니가 키워주셨는데’로 잠깐 추억하고 사라지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지금의 내 삶은 뿌리와 가치관이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의 가르침에서 나왔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회고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되려고 우리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조부모들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육아에 나설 필요가 있다.1528159541443

 조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대부분 정서가 풍부하고 예의가 바르다. 이건 우리 주장이 아니라 미국 교육계에서 나온 얘기다. 마약, 총기사고, 문란한 성문제 등 미국의 청소년범죄는 우리나라 성인범죄보다 더 심각하고 폭력적이다. 그런 미국이 새로운 대안으로 찾아낸 해결책이 조부모에 의한 교육이다. 조부모와 교류가 많아질수록 학업성적과 성취도, 사회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연륜을 갖춘 조부모의 말 한마디, 판단 하나가 어린 손주들에게 심리적 안정이라는 긍정적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옛날 대가족 시대에도 우리의 정서적 세계는 부모님보다도 할아버지 할머니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분들에게 밥상머리에서 예절을 배웠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짓을 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오랜 세월을 경험한 지식과 지혜에는 힘과 권위가 있었다. 

요즘 시대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 아이를 낳지 않아 큰일이라고 떠들어대면서도 정작 밖에 나가보면 사회가 아이들을 탐탁지 않게 보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마다 아이들 뛰는 층간소음 때문에 어른들 싸움이 칼부림으로 이어지기 일쑤고, 우리 가게는 당신네 아이가 못 들어온다는 ‘노키즈 존’이 확산되고 있다. 성스럽고 고귀한 모성이 자식 잘못 키워 ‘맘충’이라고 벌레취급 받는 오늘날의 세태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점점 영악해져 과거의 문제아들은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반발과 부러움으로 잘 사는 집 아이들 물건을 뺏고 때렸다면, 요새 문제아들은 거의 대부분이 풍요로운 부유층 아이들이다. 뭐하나 부족함 없는 풍요로운 가정환경에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이 일진이 되어 힘없고 어려운 친구들을 잔인무도하게 괴롭힌다. 이유를 물어보면 하나같이 재미로 괴롭혔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모든 게 넘쳐나서 사는 것이 벌써부터 시시해진 아이들이 그저 재미로 나보다 형편이 못한 친구를 짓밟고 쾌감을 느낀다. 그 아이들이 커서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를 똑같이 짓밟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일까. 안동에 유교식 서당이 꽤 남아있는데 방학이면 자리가 없을 지경이다. 방학 기간만이라도 예의범절을 가르치기 위해 부모들이 자녀를 민속촌에서나 볼 법한 안동 서당에 어학연수 보내듯 내려 보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교육에 미친 나라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하다하다 아이들 예의범절까지 수백 만 원을 들여 과외를 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그 절박함이 이해가 되기는 한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력 정치인 아이들, 정재계 재벌가 아이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만 양 물의를 일으켜 국민들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물론이고 선대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가업을 패가망신 직전으로 내모는 뉴스가 밤낮없이 터져 나오는 걸 보면서 불안에 떨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돈이 없어 망하는 집보다 자식들 잘못 키워 망하는 집이 더 많다는 한숨소리가 예삿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해결책은 뻔하다. 뼛골이 빠지는 고통이기는 해도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또 한 번 몸을 일으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의 새끼를 책임지고 제대로 된 사람으로 키워내는 수밖에 없다. 손주육아는 사사로이는 집안사인 동시에 넓게는 사회공헌이다. 조부모 밑에서 바르게 자라 어른을 모실 수 있는 마음의 넓이를 가진 아이들이 세상을 망가뜨릴 리 없다. 나를 가르치고 키워주신 조부모를 사랑하는 아이가 세상을 미워하는 범죄자가 될 리 없다.1528155974146

어차피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주는 건 가족뿐이다. 화목한 가족은 억만금과도 못 바꾸는 인생의 행복이다. 부모는 죽을 때까지 부모인 것이다. 괜히 어버이가 아니다. 그 어버이 노릇, 이왕이면 끝까지 다들 잘해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출처: 미래에셋대우 은퇴연구소/글 : 작가 김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