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중매시장으로 본 한국의 자산시장

VIP 중매 시장에서 ‘1등 신랑감의 기준’은 무엇일까? 의사·변호사 등 이른바 ‘사(士)자’ 가진 직업일까? 신랑감의 사람 됨됨이? 아니면 부모님의 사회적 지위? 그것도 아니라면 재산일까? 재산이라면 누구의 재산?

20~30년 전만 해도 사자 직업을 가진 사위를 들이려면, 열쇠가 두 개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자동차와 아파트 열쇠. 그러나 최근 VIP 중매시장에서는 과거와 같은 사자 프리미엄은 매우 적다고 한다. 대신 재산에 대한 프리미엄이 높아졌다. 그 재산도 본인이나 부모의 재산이 아니라 조부모의 재산이 1순위라고 한다. 필자는 한 지인으로부터 이 얘기를 들으면서,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저성장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저성장의 단면?1556850130213

가족이나 결혼이 사랑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당대의 경제구조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가족 문제 대부분은 사랑 문제이기보다 돈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 일본의 가족 사회학자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는 “최근의 가족 동향은 경제의 구조 전환과 가족의 운명이 연동돼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매시장은 연애시장과 달리 사전에 자격에 맞지 않는 이들을 걸러내는 구조다. 다시 말해 조건을 충족한 이들만 만날 수 있는 시장이다. 조건 미충족자들은 아예 시장 진입조차 불가능하다. VIP 중매시장의 조건의 순위를 나열하면 ‘부모 재산-부모 재산과 지위-본인의 능력과 사람 됨됨이’다. 과거에는 본인의 능력이 최우선 순위가 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왜 지금은 순위에서 밀려난 것일까. 이를 주식 가치 분석의 관점에 비추어 보자.

주식 가치는 크게 3가지로 구성된다. 자산가치, 수익가치, 성장가치가 그것이다. 자산가치는 기업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이나 현금과 같은 금융자산을 말한다. 자산가치는 기업이 그동안 벌어놓은 돈의 크기를 의미한다. 수익가치는 현재 영업활동으로 얼마나 돈을 잘 버느냐를 뜻한다. 해마다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으로 수익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끝으로 성장가치는 미래에 관한 것으로 나중에 돈을 벌 가능성을 뜻한다. 예를 들어 일부 바이오 관련 기업은 자산가치는 거의 없고 수익가치도 낮지만, 성장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만일 어떤 기업이 자산도 많이 가지고, 현재 영업활동으로 돈도 잘 벌고, 미래의 성장가치까지 높다면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될 것이다.

자산가치, 수익가치, 성장가치를 VIP 중매시장에 적용해보자. 조부모 재산은 자산가치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미 과거의 활동으로 축적해 놓은 자산이다. 수익가치는 부모의 재산에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아주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혼 적령기에 많은 돈을 벌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 당사자는 성장가치와 연결시킬 수 있다. 지금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창창한 미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1556850157790

결국 VIP 중매시장은 투자의 시각에서 보면, 성장가치보다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미래보다는 과거와 현재에 더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있는 것. 여기에 조부모의 재산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은 아마도 고령화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소득과 수명은 확실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소득이 높을수록 건강하고 수명이 길다. 일부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운동보다도 소득이 건강을 설명하는 데 더 강력한 변수라고 한다.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일본의 경험을 볼 때 ‘노노(老老) 상속’이 많아지게 된다. 구순이 넘는 부모가 환갑이 지난 자녀에게 상속하는 게 흔한 풍경이 된다. 그러나 조부모와 손자녀와의 관계는 다르다. 재산이 많다면, 손자녀에게 증여나 상속할 가능성이 부모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저성장과 고령화가 만나면서 VIP 중매시장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듯이 자산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성장의 부정적인 면은 꿈과 가능성을 거세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만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VIP 중매시장처럼 자산시장에서도 미래보다 과거와 현재에 더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현금흐름이 좋은 자산에 대한 선호도 증가다. 현금흐름은 현재의 수익이다. 배당·임대소득 등의 형태로 꾸준한 현금흐름을 제공하는 자산은 저성장 시대의 좋은 투자 대안이 된다. 가격이 오르지 않아도 현금흐름이 있으니 마음 편히 보유할 수 있고, 나중에 가격이라도 올라주면 그것은 덤이다. 배당주, 임대 가능한 부동산, 리츠, 인컴형 금융상품 등의 수요는 더 넓어지고, 그 수요에 비례해 투자 매력도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저성장은 반대로 성장이 희소해진다는 의미다. 자본주의 시장은 희소한 것에 더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한다. 성장은 어려워지나 성장하는 것에는 더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보상을 한다. 성장을 실제 이뤄낼 수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큰 자산이라면, 그것은 높은 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저성장 시대에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는 현금흐름과 성장의 희소성을 결합시키는 것이 될 수 있다. 현금흐름이 꾸준히 나오는 자산은 위기 상황에서도 치명타를 입을 확률이 낮다. 현금이 계속 내 손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것을 받으면서 버텨도 되고, 적극적 투자자라면 추가로 매입해서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출 수도 있다. 현금과 현금흐름은 위기 상황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응 수단 중 하나다. 그러나 현금흐름이 꾸준한 자산은 대개 성장성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배당주가 대표적이다. 성숙기에 진입한 기업이 많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성장 개념을 가진 부분을 포트폴리오 편입시키는 것이다. 성장 개념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신흥국가로 볼 수도 있고, 4차 산업과 같은 테마일 수도 있고, 펀더멘털 측면에서 기업 이익의 성장으로도 볼 수 있다. 아니면 글로벌 중산층의 증가를 성장으로 보고, 소비재 기업에 투자할 수도 있다.

현금흐름과 성장의 희소성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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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는 연금과 같은 장기 자산은 70~80%를 현금흐름이 있는 자산에, 나머지를 성장에 할당하고 있다. 현금흐름이 있는 자산 비중이 큰 것은 일단 시장에서 죽지 않기 위해서이다. 현금이 있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나머지 20~30%는 성장에 베팅한다. 수익이 많이 나면 좋고, 많이 나지 않더라도 현금흐름 자산이 있으니, 미래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같이 돈을 버는 고성장 시대에서 버는 사람만 버는 저성장 시대로 넘어왔다. 미래는 언감생심이고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해진 시대다.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변화는 자산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런 의식 변화를 이해한다고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형성된 의식에는 관성의 법칙이 작동한다. 큰돈은 아니더라도 손해 보지 않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의식변화로 수혜를 입을 곳이 어딘지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다 운 좋게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자산을 찾아냈다면, 그것은 덤이라도 생각하자.

출처 : 이코노미스트/은퇴연구소
기고 :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상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