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대여자보다 자산 소유자가 유리

자산으로 부 창출하는 속도 더욱 빨라져… 자산시장의 양극화 갈수록 심화

 

흔히 체감하는 사회 현상 중 사람들 간의 입장 차이가 또렷한 것의 리스트를 뽑아보면, 아마도 ‘양극화’는 상위권에 자리할 가능성이 크다. 양극화에 대한 의견이나 철학 차이는 극명하다. 한 사회에서 부자와 빈자가 왜 생겨나고, 그 과정과 결과는 과연 공정한 지, 그리고 양극화가 심하다면 부의 분배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 차이는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할 뿐만 아니라 깊다. 철학이나 세계관에 따라 해법도 확연히 구분된다. 극단적인 한편에서는 양극화는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한 하나의 본성과 같은 것이므로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극단에서는 양극화는 경제 불평등이란 악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공정한 경기를 망치는 주범이므로 각종 세금 등의 정책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어느 것이 옳은지, 어떤 해법이 적합하고 시대적 소명에 맞는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다만 양극화가 단기간에 바뀌기 어려운 구조적 현상이라면, 투자와 자산시장 입장에서 양극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짚어 보고자 한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

 

경제적 측면에서 양극화는 크게 소득, 소비, 자산(또는 부)이란 3가지 범주에서 볼 수 있다. 소득과 소비는 돈의 흐름 또는 유량(流量, Flow)을 나타낸다. 이와 달리 자산은 축적의 성격을 가진 스톡 또는 저량(貯量, Stock)을 뜻한다. 쉽게 생각해 매월 받는 급여는 소득에,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나 부동산은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양극화를 논할 때,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자산의 양극화이다. 그중에서도 부동산이 가장 큰 이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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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양극화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나온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이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40여 년 가까이 경제성장률이 높아 재산의 크기가 다르더라도 대부분 사람의 소득은 증가했다. 고도성장으로 소득이 늘면서 백색가전과 주택과 자동차를 사들였다. 작고한 최진실이 “남편 퇴근시간은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삼성 VTR 광고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시기도 1980년대 말이다. 1990년대 말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 있고 차 있으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겼다. 마이홈 마이카는 중산층의 상징이었다. 소득이 늘면 희망도 커진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기본가치가 사람들의 신념 속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이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싹 바꾸어 버렸다. 마이홈 마이카도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집이 있더라도 어느 곳에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해졌고, 자동차도 표준화된 프라이드나 소나타가 아닌 어떤 차를 타느냐를 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젊은이들은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포기의 철학을 내재화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와 같은 커다란 충격은 약한 고리를 무너뜨리는 속성이 있다. 예를 들어 외환위기 때 약한 고리는 부채였다. 레버리지가 높은 기업이나 개인은 고금리 정책으로 시장에서 패자로 전락했다. 반면 경쟁자들은 횡재를 했다. 기업이 쓰러지면 그 기업이 가지고 있는 시장은 동종 업계의 다른 기업이 가져간다. 이 기업은 경쟁자가 망해서 시장점유율을 늘린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개인도 사정은 비슷하다. 현금흐름이 나빠져서 주식이나 부동산을 처분하면, 누군가 사들인다. 그런데 시장은 영원히 침체의 늪에 갇혀 있지 않다. 어느 시점에서는 서서히 가격이 오르기 시작해서 불꽃을 활활 피운다. 자산을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자산 격차는 단기간에 확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자산시장에서 지난 20년 동안 일어났던 일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초 주식과 부동산 랠리,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주식과 부동산 동반 상승,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의 부동산 가격 상승. 이 세 번의 대세 상승 사이클에 한번도 동참하지 못한 사람과 참여한 사람의 자산 격차는 숫자로 검증할 수 없지만 아마도 상당히 벌어졌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산이 늘어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항간에 우스개 소리로 남자가 돈을 벌면 자동차와 집을 바꾼다고 한다. 왜 이 두 가지부터 바꿀까. 집과 자동차는 다른 자산이나 소비재와 달리 지위재(또는 위치재, positional goods)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위재의 사전적 정의는 “그 가치가 다른 사람이 소비하는 다른 재화나 서비스와의 비교에 크게 의존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말한다. 어느 지역에 살고, 어떤 차를 운전한다는 것이 그의 지위를 드러내는 신호 역할을 한다.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추가로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한 지위재가 가진 희소성의 가치는 더 올라간다. 더 나아가 지위재 내에서도 세분화 정도가 심해진다. 예를 들어 같은 지역의 아파트라도 조망권, 내부 커뮤니티, 학군 등등에 따라 더욱 차별화 된다.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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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시장의 양극화를 촉진하는 시대적 흐름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네트워크 효과가 대표적이다. 구글과 같은 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은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한다. 플랫폼을 선점해 네트워크 참여자의 숫자를 늘리면, 경쟁자들이 들어오기가 만만치 않다. 자본주의 시장의 금과옥조인 ‘이익이 있는 곳에 경쟁이 있다’라는 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이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시스템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가져가는 부(富)와 네트워크 하단에 위치한 사람들의 부는 엄청난 차이가 날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대표적인 자동차 공유 플랫폼 회사인 우버 창업자들이나 벤처 자본가들이 올린 막대한 부와 자동차 운전을 하는 사람들의 부는 비교 불가일 것이다. 전자는 자산(주식)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올렸지만 후자는 생활비 정도의 소득(현금흐름)을 취할 뿐이다.

 

현대에 와서는 자산으로 부를 창출하는 속도도 매우 빨라지고 있다. 새로운 기업이 증시에 상장돼 막대한 부를 만들어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욱 짧아졌다. 워런 버핏이 200억 달러를 모으는 데 거의 28년이 걸렸지만, 빌 게이츠는 21년, 구글의 창업자들은 8년 11개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8년 1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양극화

 

고령화도 양극화의 촉매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고령자는 그동안 벌어 놓은 자산을 유동화하거나 현금흐름이 있는 자산을 소유해서 생활비를 조달해야 하는데, 자산을 소유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삶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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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양극화에 대한 적확한 해법은 찾기 어렵다. 양극화를 자연스런 시장 기능의 귀결로 보든, 부의 편중에 따른 부작용에 초점을 맞추든 현 시점에서는 양극화를 하나의 실체로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양극화의 하단이 아닌 상단에 위치한 자산을 소유하는 것이 소득에만 의존하는 것보다는 리스크가 적어지는 사회가 된 것이다. 직접 소유하든 간접 투자 수단을 활용해 간접적으로 소유하든 양극화의 시대에는 저축과 같은 자금 대여자보다는 주식이나 부동산을 소유하는 자산 소유자가 더 유리한 것만은 분명하다. 슬프지만 차가운 현실이다.

 

* 출처 : 이코노미 / 미래에셋은퇴연구소

* 기고 : 이상건 /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